꽃이 필 때 - 송기원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
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

어리석도다
내 눈이여.
삶의 굽이굽이, 오지게
흐드러진 꽃들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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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4월 어느 봄날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벚꽃잎 가득 날리는 고향 동네 입구의 길목이 떠올랐습니다.
차창 밖으로 눈보라 치듯 하얀색 꽃잎이 휘몰아 치고
창 밖으로 손내밀어 살풋 손바닥에 꽃잎이 떨어지는 상상을 해 봅니다.

오는 봄에는 벚꽃잎 가득 모아
한 줌은 코팅지에 넣어 책갈피도 만들고
한 줌은 꾹꾹 눌러 편지지에라도 붙여 보아야겠다고
슬쩍 생각만 해 봅니다.

찬 바람 부는 겨울 새벽.
고양이 울음 소리마저 잠든 시간에
담배 연기 한모금 어느 골목길에 남겨 두고
쓸데없는 생각만 주머니에 담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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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따스한 오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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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여야만 눈물인 것은 아니다.

그대 모습 가슴에 담으면
눈물보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그대 모습 가슴에서 내몰면
눈물보다 차가운 바람이 인다.

소리를 내야 마음인 것은 아니다.

입김조차 얼어 붙는 바람에 쓸려버린 목소리는
불 켜진 당신 창 아래서 이리저리 바스라지고
간신히 당신 창에 붙은 내 마음은
등 돌린 온기에 소리없이 녹아 버린다.

눈동자에 물기 하나 없다고
꽉다문 입술 무겁기만 하다고
등 돌려 보이지 않는다고
잊은 것이 아니다.

그대 작은 몸짓 하나 가슴에 남겨
칼바람 이는 겨울의 고도에서 살아남았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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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겨울은 겨울.

뼈를 추려낼 듯한 추위는 12월에나 기대해야 할까 라며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고 이야기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외출 갔다 온 사람이 마악 집에 들어 섰을 때
찬기운 한가득 옷자락에 품고 들어와 풀어 놓는 느낌도 사라졌고
누군가의 방에 들어 섰을 때 가득 풍겨 나오는 난로의 온기도 없어졌다.

엄마의 품에서 까먹던 귤은 지금도 내 손에 있건만 이미 단 맛은 사라졌고
아랫목에서 풀쭉 풀쭉 끓던 할머니의 동동주 냄새도 이제는 없다.

뭉치면 뭉치는 데로 눈이 꾸둑꾸둑 엉겨 붙어 털어내기 바쁘던 벙어리 장갑도
시린 손 행여나 빨갛게 물들까 덥썩 잡아 넣어 주셨던 두툼한 외투 주머니도
새까만 가죽 장갑과 오리털로 둘러진 내 주머니일 뿐.

너무나도 추워야 온기의 소중함을 깨닫는 무딘 사람이기에
혼자이어야 같이함의 진정을 되돌아본다.

겨울 같지 않은 이 겨울은
그래도 겨울이라서
무시하고 웃어 넘기려 하면 금새 코 끝에 재채기가 머문다.

에취!

당신의 인삿말이 귓전에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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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한 바람을 껴안고 방에 들어오니
차에 여지없이 두고 온 물건들이 떠올랐다.
매번 잊어 버리고 손잡이에 걸쳐 놓은 채 오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담배.
오늘은 거기다 PDA까지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슬리퍼만 직직 끌고 계단을 내려가
아직 히터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차 문을 열고
주섬 주섬 물건들을 챙긴다.
몇개 되지도 않는 크고 작은 물건들은
언제나 한손에 다 잡히지 않고
주머니에 넣을지 손가락에 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고민을 하는 자신이 잠시 한심해짐을 느낀다.

차 문을 닫기 전에 버릴 건 없는지 잠깐 살피고
시트를 바로 한다음 문을 닫고 리모콘을 눌러 문을 잠근다.

기왕 나온김에 담배 하나를 빼물고 불을 붙여
차가운 공기와 함께 폐부 깊숙히 연기를 끌어 들이다
문득 자정쯤 보았던 눈부시게 밝았던 달이 보고싶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은 보이지 않고 빌라 지붕 뒤로 밝은 빛이 스며나와 그 쯤에 있음을 알려주어
굳이 발걸음을 옮겨 보기엔 왠지 귀찮아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문득 오리온 별자리를 발견했다.

어느새 겨울.

누나에게 북두칠성보다 먼저 배운 겨울을 알려준다는 별자리인 오리온 별자리는
시기를 알려준다는 점과 누나와의 추억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어떤 별자리 보다 소중한 별자리가 되었고 지금도 나의 겨울을 가늠하는 방법은
오리온 별자리가 그 기준.이다.

어제 그제 비가 내리고 바로 찾아들은 차가운 공기가
씻겨진 하늘을 그대로 얼려버린 것일까
서울의 밤 하늘에 여간해선 보기 힘든 오리온 별자리를 비롯해서
짐작은 못하겠으나 제법 많은 별들이 검정에 가까운 진청색 밤 하늘에
총총 박혀 제법 이쁜 형상을 보여준다.

전화기를 꺼내 달빛이 눈 부시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느냐고
서울 도심 하늘에 간만에 아름다운 반짝이가 가득하다고
톡톡 톡톡 두들기다 수신인이 없음을 이내 깨닫고는
싱거운 웃음과 함께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겨울이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여미어
자칫 풀려버릴지도 모를 마음의 매듭을
차가운 공기와 우연한 마음으로부터 보호하면서도
자칫 추위에 힘들어간 어깨가 부서지지 않게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게 되는 겨울.

조금만 힘을 빼고 세상을 바라보자.

조금만 더 따스한 세상을 만나도록 하자.

담담하게 그리고 포근한 세상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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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당신은 그 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온몸에 휘감고 들어설 것입니다.
당신이 휘감고 들어온 바람이 이 공간에
해방되어지면서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그 차가운 기운에 당신이 당도했음을 느낄겁니다.

그래도 일어서서 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이윽고 당신이 내게 다가와 그 차갑고 섬뜻한 손길을
내 뺨에 살포시 올려 내 마음과 내 정신을
부드럽고 날카롭게 깨워 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차가움에 부활되어진 내 모습은 온기를 품기 시작하고
그 온기는 이내 당신의 차가움을 녹여 결국은 당신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대.. 오시지 마십시오.
우리가 만나 누군가 사라지지 않는 그런 날이 오기를
난 긴긴시간 좀 더 여기에 화석이 되어 기다리고 있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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