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그저께의 대답을 듣겠다고 선배의 전화가 왔다.
연애에 관해서 가볍게 산다고 이야기 한지 몇년만에 어떻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냐고
왜그렇게 사랑을 사람을 무겁게 이고가느냐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힐책하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라
'대답은?' 이란 질문에 피식 웃음부터 트뜨려버렸다.

그러나 그 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대답은?' 이라고 물어오는 선배에게
달리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음은 선배도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결국 선배의 대답을 듣기 위한 아침 전화는 서로간의 
간밤에 위장은 건강하셨는지 아침 문안인사가 되어 버렸다.

약간의 농담 후 이어폰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고나서
한손으로 의자를 더듬 더듬 찾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실 이쯤 되면 이상하다거나 어이없다는 표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게 결국 나였을 뿐이고 그게 결국 내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방법도 있는 것이고 그런 길도 있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데 외길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다만 끝에 도착하고보니 과거에는 그 끝이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건만
이번 끝은 그냥 끝이더라는 것. 다른 길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굳이 찾아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이기까지 하니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그렇다기 보다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실소가 우선이다. 그게 우선이라는 점이 슬프다면 충분히 슬플 수도 있겠다.

친한 동생의 말에 의하면
어쩌면 그리 무겁지 않게 헤어졌다는 점이
언젠가 갑자기 엄청난 무게로 다가와서 오빠가 충격을 받지나 않을지 걱정이라는데
왠지 그 무게는 예전의 그 실감나지 않아 라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알고 행했음에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환경이 조금 바뀌고 내 삶에 있어서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현실. 예전과는 달리 좀 더 두꺼워진 지갑이라던가
통장의 잔고가 0이 몇개더 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대두 될 때 마다
과거 그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도 상처였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더 나아졌다고는 해도 이것 하나는 하나일 뿐 전체가 아니라서
보여줘봐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건 잘 안다만..



여튼..
선배의 질문에 '네 뭐 좀 웃기지만 아직은..' 이라고 문자를 보내다가
찍지 말아야 할 번호를 찍고 심지어는 발신을 누를 뻔한 자신을 발견하고
솔직히 당황해 놀라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자신을 발견한 아침.
자기 직전에 이런일은 남겨두어야 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일기 한줄 끄적여 본다.

'STORY > day writt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형. 당하다.  (0) 2009.12.24
꽃이 필 때.  (2) 2009.12.21
목소리를 들어  (0) 2009.12.17
'특별'하여짐의 논리와 진리  (0) 2009.12.14
Wish to Exciting Life League Me2DAy  (0) 2009.12.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