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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딱딱한 과일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5살 6살 기억에...

할머니 방 창으로 지루한 태양이 배어 들 때 즈음에

가끔 할머니는 사과 하나를 과도로 반으로 뚝 잘라서는

둥그스름한 숟가락으로 벅벅 속을 긁어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했다...

숟가락에 넘치는 사과 즙이며 할머니 방의 묘한 냄새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한 느낌...


나 군대를 제대한 첫날.

새벽에 잠을 문득 깨서 할머니 방에 들어 가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잠깐 의식이 돌아 오셨나 보다...

내 손을 잡고는 하시는 말씀이

"내 이제 너 돌아 온 거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한다...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 제정신으로 돌아 오시면 꼭 날 찾으셨다고...


그로부터 일주일... 할머니를 묻고 돌아 온 그 다음 날 새벽 세시...

난 할머니 방에 앉아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라서 숟가락으로 파 먹어 보았다..

사과즙이 손에 묻어 끈적해지고.. 내 볼도... 끈적해 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해가 지난 언젠가... 고향 집 내 방에서...

서랍 정리를 하다가 문득 발견한 할머니의 주민등록증...

문득... 사과가 먹고 싶어졌다...

숟가락에 넘치게 담겨 손이 끈적끈적 해 지는 그 사과가...

--------------------- 2004년 01월 28일.

피곤했던지 나도 모르게 잠깐 졸았는데 할머니 꿈을 꾸었다.
꿈속의 모습은 다른 모습도 아닌 할머니를 염할 때였는데

할머니 다리를 붕대로 감고 있는 중에 경주 이모부가 다리 아래에 주저 앉아 통곡하듯 소리를 쳤다.
'다리는 묶지 마세이~ 다리는 묶지 마세이~ 그 실한 다리로 휘이 휘이 걸어서 가시게 다리는 묶지 마세이~'
그 광경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이라고는 결코 보이지 않았을
누나들과 나는 결국 배에서부터 가슴을 저미며 터져 올라오는 통곡을 터뜨리고 말았다.

꿈에서 깬 나는 잠자며 울고 있었나보다...
눈을 몇번이나 비벼 멍하니 이불위에 앉아 할머니를 다시 떠올린다.

잘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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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사과할 때는 사과만 합시다.

사과 하는데 왜 조건을 달며
사과 하는데 왜 협상을 합니까

사과하는 마음은 그런게 아닐 것 같습니다.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 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 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 이해인 <말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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