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멈추는 것이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멈추고, 시선을 멈추고
삶에 대한 목표를 멈추고, 열정을 멈추고

살아가다 가끔은 그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 보아야 하겠지만
채 고개가 다 돌아 가기도 전에 발 아래로 깊은 뿌리가 내려 버리면
뿌리로 부터 시작된 멈춤이 혈관을 따라 온몸을 석화시키기 시작하면
짠맛 조차 나지 않는 기둥이 되어 버리면 하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이 내내 등 뒤에서 떠밀듯 압박을 가해왔다.
아니 실은 스스로가 등 뒤로 쉬지 않고 폭탄을 던져
그 충격으로 혹은 충격을 피해 앞으로 튕기듯 내달렸던 것.

어깨에 힘을 빼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걷기 시작한 어느날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어느새 현실로 변해 온몸을 우두둑 우두둑 휘어감고 있다.

중용도 모르고 적당히도 몰라 멈추면 죽고 내달리면 사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미친듯이 사랑도 하고 미친듯이 일하며 쉬지 않고 두뇌에 박차를 가해오다가
내 의지와는 하등의 상관없이 벌어진 아무것도 할 수 없음. 이라는 상황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을 공지해온다.

어딘가 또 내달릴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다시 찾아 일어서리라 생각한다.
결국은 그 길 입구에 서서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는 나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행로는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반면 너무 강해서 곧 부서져내릴 것만 같다.

내달리는 것이 힘겹지 않은 이상
나는 그 길이 즐겁다.
에너지를 뻗쳐 사방 모든 것에 촉수를 드리우고
미세한 느낌 하나까지 느끼며 신나게 내달릴 때 확 피어 오르는 그 벅참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희열 중에 하나.

내가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이런 시간에 마음속에서 조금씩 피어 오르는 인연에 대한 두려움.
구체화 시킬 수 없는 것들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해오는 것들을 해석하지도 못하는 막연함 속에
이미 꽃은 봉우리를 피웠고 만개하기도 전에 져버리지는 않을지
혹은...
스스로 꽃 봉우리를 썩둑 잘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지
날이 바짝 선 가위 하나 꽃 모가지에 걸쳐놓고 고민하는 모습.

이미 내 꽃은 한번 잘랐건만 잡초마냥 다시 피어 오르고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네 꽃은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내 현실의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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