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는 물었다.
네 가슴에 있는 그 세로로 나 있는 흉터는 무엇이냐고.
그녀는 자신의 앙가슴 약간 위쪽 라운드 티가 패여 보이는 곳에
슬쩍 손을 갖다대더니 좀 더 어렸을 때 수술을 한 자국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가 성형 수술은 같은 건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리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하며 작은 애벌레라도 붙어 있는 듯한 크기의 붉은 흉터를
다시금 어루만진다.

언젠가 그가 자기보다 십년 정도 차이가 나는 어린 소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 소녀의 손에 흉터가 있음을 보았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을 만나다가 그 만남이 몇번째인지 세지도 못하게 된 어느날
손을 살며시 잡고 네 손등에 있는 이 흉터는 무엇이냐고.
애써서 그러나 그리 완강하지는 않게 손을 빼면서 그냥 흔적이지 뭐 라고 대답한다.
그 흉터는 손등에 있는 모든 혈관을 따라 스테이플러로 짜집기를 해두기라도 한듯
가지런하게 줄 지어서 손목까지 이어져 있는데 흉터를 살짝 어루만질 때 마다 남자는 가슴이 아팠다.

남자는 언젠가 그녀와 처음으로 알몸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문득 그녀의 양 손목에 깊게 패인 흉터를 보았다.
그것을 눈치 챈 그녀가 샤워를 막 끝내고 다시 침대에 누워 품으로 파고 들며
흉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남자는 대답했다.
네가 가진 시간에 대한 흔적인데 그럴리가 없다고.

남자가 촬영을 하다가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델의 자세가 자꾸만 한쪽으로 치우치는데 의도적인 것 같다는 것.
급기야는 촬영을 중도에 그만두고 매니저와 코디등이 따라 붙어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힘들게 촬영을 끝냈다.
뒷풀이 자리에서 술이 얼큰하게 오른 모델이 나중에 개인적인 촬영을 부탁하고
남자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한달여가 지나 그 모델의 세미누드를 뷰파인더 안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남자는 모델의 옆구리에서 오른쪽 허벅지로 이어진 깊게 패인 흉터를 보았다.
그날밤 소주를 마시던 자리에서 모델은 완전히 지우지 못할 바에는
그대로 남겨두고자 오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하루는 후회를 하고 다음날은 슬퍼하고를 반복한다며 희미하게 웃어보이는 모습을 보며
남자는 다시금 소주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붉게 변한 남자의 벗은 몸에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희미하거나 진한 흉터가 다리부터 팔 그리고니 얼굴에도
여기저기 가득한 것을 보고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의자 끝에 앉아 남자의 긴긴 고백성사 같은 이야기를 다 듣고난 그녀는
급기야 목을 놓아 엉엉 울었고 남자를 꼭 안아 주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그녀는 남자를 떠났다.

남자는 다시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담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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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후-
어이...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가슴을 움켜진 손에 힘이 들어 갔다.
힘들게 뒤돌아 보았지만 답답한 시선만 가득 깔려 있다.
다시 돌아서 걷기 시작한 그의 등 뒤로
다시 낮은 목소리가 깔렸다.
어이... 그 쪽이 아냐.
그는 점점 걸음을 빨리 했다.
아냐 그럴리 없어. 그자가 날 다시 찾아 왔을리 없어. 난 이제 볼 수도 없는 걸.
그는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눈 앞이 뿌옇게 변하는 것 만 같았다.
땅이 마치 매트리스 라도 깔아 둔 것 마냥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주위 사람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는 대로로 뛰어 나갔고 마침 공사 중이던
맨홀 구멍에 발이 걸려 몸을 크게 휘청였다.
그는 넘어 졌고 넘어진 자리엔 공사 중이던 가스 용접기가 켜져 있었다.
윤곽이 다 사라질 정도로 타버린 그는 아직 숨이 가늘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그가 미소를 지으며 사라 지는 것을 보며
서서히 죽어 갔다.

-한시간전-

그는 역사 박물관에 온 것이 애초에 잘못이라고
혼자 자책 하고 있었다.
사형 집행 재현장에 왔을 때 부터 그는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 했고
빈혈일까... 어지러움 마저 느끼기 시작 한 것이다.
동행한 이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빠
그의 상태를 돌아볼 겨를이 없는 듯 했다.
그는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가 나가야 하는 길 목에는
시구문이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찬바람을 내뿜는 그 곳.
그곳을 지난다는 것은 그에겐 곤욕이며 공포 였다.
끝은 분명히 있을진데 그 거리도 깊이도 가늠 할 수 없는
깜깜한 어두움이 그를 더욱 공포의 상상 속으로 끌고 들어 갔다.
몸은 문 밖에 있지만 영혼은 벌써 그 안을 들어서서
등 뒤의 빛을 느끼며 뒤돌아 보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 들어 가는 느낌인 것이다.
그는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 올랐다.
완전히 잊어 버리고 있었던 기억.
조각조각 이어져 다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잔뜩 무서웠던 기억.

어느 여름밤 동네 신작로에서 울리던 개 울음 소리와
2층 창 밖으로 휙 지나가던 그림자.
늦은 시각 귀가 길 대문을 여는 동안 현관문 앞에 서 있던 노인.
개구멍을 통해 도망 가던.... 개구멍? 무슨 개구멍?
그는 시구문 앞에 이미 한발을 걸치고 있었고
그 컴컴하고 축축한 구멍에서 어릴 적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개구멍을 통해 도망 나가다가 구멍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내미는 목에 줄을 걸어 낄낄낄 웃던 그자의 허연 뻐드렁니.
아.. 맞아..그랬지...
그 자는 앞서 나가던 형의 목에 밧줄을 걸어 미친 듯이 달려버렸던 것 이다.
살려 달라고 자신의 이름을 마구 부르짖던 형을 외면한 채
그는 담 안 쪽에 웅크리고 앉아 와들와들 떨며 울고 있었다.
그 자는 결국 동네 사람들에게 잡혔고
그 때만 해도 법과 불문법이 동시에 존재 했던 터라
순사들에겐 알려 지지 않고 동네 개 잡는 나무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몰래 동네 밖 화장터에 버리기로 했는데
그 자의 덩치가 너무 커서 그냥 밖으로 나가다가는 들킬 것만 같아서
동네 사람들은 동네 바깥쪽 옛 성터에 있는 시구문으로 나가서 화장터 까지 가기로 했다.
화장터를 다녀온 어른들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밤에 어른들이 막걸리 한잔 중에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그 자가 시구문을 나가는 동안 벌떡 일어 났다는 것 이다.
거짓말 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건 그 자가 그렇게 외쳤다는 것 이다.
이제 이 길은 내꺼다! 그리고 그 놈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가 데려 갈 거다!

그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억이 나 버린 것이다.
그는 시구문 안쪽에서 누군가 손짓 하는 것을 본 듯 했다.
아냐... 피곤해서 그렇겠지. 어제 술이 과했던 거야.
그리곤 몸을 돌렸다.
몇발 가지 않아서 그는 등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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