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한개 더 삶다.

아이들이 밥 맛 없다고 라면을 끓여달라기에
세 명분으로 두 개를 삶다가
얼른 한개를 더 넣는다.
라면 국물에 뜨는 기름이 몸에 좋지 않다고
개수를 줄이며 살아 왔는데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삼던 라면 국물 맛이 떠올랐기 대문이다.
24명의 자식들 점심으로 8개의 라면을 삶던 어머니
양이 많아야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기에
물을 많이 넣고 퍼지도록 끓였다.
나는 전태일 어머니의 그 라면을 생각하며 젊은 날을 버텼다.
자취방 찾아 오는 친구들에게
라면에 찬밥 먹는 대접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감기게 걸리면 보름을 넘기기 일쑤고
욕할 때 조차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몸, 휘하려고도 한다지만
라면을 먹지 않을 정도로 겁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버리려고 했던 라면 맛
한식남 심은 나무처럼 살려야 한다고 아이들 앞에서
나는 오기를 부린 것이다.
-명문재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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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값이 오늘을 기점으로 100원이 더 오른다고 한다.
뉴스에서 들은 이 한줄의 이야기는 더이상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삼양라면이 꿀꿀이 죽을 5원에 사 먹는 사람들을 보고 더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정부에서 5만불을 빌려 일본에서 라면 끓이는 기술과 기계를 도입해와서
라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라면만해도
우유라면 된장라면 까만소라면 간장라면 형님라면 해물라면 짬뽕라면 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컵라면인 삼양 컵라면 (그 때 당시에는 종이 곽 위에 플라스틱 커버가 하나 더 있었다.)
을 뜨거운 물을 부어 넣고 3분을 두근 거리며 기다려 바닥을 박박 저어 스프를 섞이게 해서 먹었던 기억과
성당의 친구들이 집에 찾아오면 야식은 10중 8, 9는 어머니께서 커다란 찜통에 라면을 끓여 내어 주시었고
집에 무슨 공사라도 할라 치면 공사 인부들에게는 짬뽕이나 자장면이 아니라 라면을 끓여 나갔었다.

밥을 못먹으면 라면이 있었고 라면을 먹으면 반드시 대접에 따로 담아 뚜껑을 덮어 두었던
차고 구둑구둑 해진 찬밥을 말아 후루룩 후루룩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먹었다.
계란 하나가 대단히 놀라운 추가 음식이었던 시대를 넘어
이제 라면에 참치 한캔 정도는 예사이고 삼겹살이네 각종 특수 작물 까지도 넣어 먹는다.

안성탕면과 신라면 그리고 너구리 라면이 주종을 이루어내며 라면이 주식을 넘어 별미의 시대까지 온 지금
시대가 발전하면서 라면이 같이 발전한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나라에 라면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가 못먹고 못사는 서민들을 위함이었음을 생각 해 보면
500원에서 1000원가지 하는 라면의 그 비쌈은 사람의 마음을 참 서글퍼지게 만든다.

대학 등록금이 일천만원에 육박하는 지금 우리의 대학 시절 때 처럼 점심은 700원에 라면 한그릇이면 충분했고
학우들이 남긴 라면을 싹싹 끌어 모아 먹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음은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겠으나 라면에 깃든 정신을 더이상 볼 수 없음은 마음이 아프다.
라면이 비싸져도 사람들은 굶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그것으로 유토피아이겠으나
극단적으로는 노숙자 배식에 라면을 쓰기에도 계산기를 먼저 두들겨야 하는 시대라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다.

라면 값이 100원 오른다.
소중한 마음이 100원어치 떨어지는 것 같다.


-------추신 :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군요.

라면에 관한 제 일기를 읽으신 여러분.

제 더위를 이렇게 사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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