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터 써 내려갈 이 글은...
약 9, 10년전쯤 광고판에 있었을 당시에 제가 좋아하던 한 선배가
모 CUG에 올렸던 글 입니다.

그 선배가 이 글을 올리면서 문두에 썼던 말은
지금 제가 문두에 쓰는 말과 같이
'다른 선배가 적은 글을 옮겨 봅니다.' 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글 이란 아마 모 작가의 책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만... 여튼...

전 이 글을 옮겨와서 제법 오래전에 다른 곳에 쓴 바가 있는 걸로 기억 합니다.
요즘 들어 생각이 드는 바가 많아 꽤 긴 이글을 다시 한번 옮겨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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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쓴 글을 다시 또 옮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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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젊은 남녀를 본다. 내가 20대의 젊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이 길이라는 사실이다.  이쪽이냐, 저쪽이냐가 사실 상관이 없다.
어느 쪽이든 가기만 하면 길이고 도로가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내 앞에 온 사람,
우연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 눈이 멀어 '사람을 사랑하는'때가 바로 그 시기이다.

하지만 30대를 넘기면 사정은 달라진다.  나는 지금 아주 안타까운 것이 있다.
아주 멋진 남자가 나타났을 때, 근사한 이성을 만났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 그냥 스쳐가자. 먼데서 구경하고 그냥 보내자.'하는
아주 서글프고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을 잊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 혹독한 20대 탓일 것이다.
겪을 것을 충분히 겪었기 때문에 나는 30대가 되어 '사람도 사랑도 언젠가는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우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략)

20대의 사랑과 시련의 정체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하는 것들이
철저하게 자기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사람을 두고두고 못잊기보다는 사랑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보살핌이 바로 그 과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울면서 매달리고 미친 듯이 술에 취해보고
아무 죄없는 친구에게 밤새 전화해서 수십 차례에 걸쳐 그 지겨운 연애사를
무용담처럼 읊어대는 이 모든 것이 철저한 자기애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오로지 자기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조차도 그것은 철저한 자기애에서 출발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를 아쉬워하고
도저히 잊지 못하는 이 모든 것은 자기에 대한 욕구에 반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20대의 사랑, 그 가운데에서 실연이라는 과정만큼 철저하게
'자기찾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셀레임만을 경험한다면
나의 반쪽만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랑의 쓰라림을 겪고 처절한 몸부림을 치면서 비로소
나의 나머지 반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찾는 일은 먼저 '인간'과의 관계, 이성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 관계만큼 나를 객관화시키는 일은 없다.
연애의 시작이 철저한 두 남녀의 주관적인 관계라면
실연은 이제 철저하게 그 관계를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이 실패한 사랑에 대한 검증작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그 남자와 만났던 찻집에 가 그 남자가 좋아했던 커피를 마셔보고,
함께 갔던 카페에 가 독특한 방법으로 나눠 마셨던 한잔의 술도
혼자서 마셔볼 일이다. <아비정전>의 그 여자처럼 닥친 상황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충돌할 일이다.  그래서 추억과 싸우고 마침내
이겨낼 일이다.  그러면서 20대의 사랑이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와 같이 아무런 예고 없이 온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주인공처럼 그 남자의 새 여자가 '나 때문에 그가
당신을 버렸다'고 뽐낼 때 '나는 당신보다 더 먼저 그를 잊었다'고
차분히 말해줄 일이다.

사랑을 하는 일은 우연이고, 찾아오면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 사랑을 잊는 것은 능력이다.
마치 인생에서 우리를 두고두고 괴롭힐 사랑이라는 독감에 대해
예방주사를 맞는 일과 같다.
사랑에 몸을 던지고 그 사랑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
이 과정이야말로 20대에 자기 정체성, 나를 알아보고 나를 분석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 처절한 정체성과의 싸움 끝에 나는 30대에 사랑도 사람도
판단을 해서 선택을내려야 한다고 내 자신을 교육시킨다.
그러면서도 한구석에서는 아직 똬리를 틀고 있는 나의 20대는 이렇게 속삭인다.

'그냥 지나치다니, 너무 아깝지 않니?  알고 싶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자,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보는 거야.  도대체 어떤지
저 길 끝까지 가보는 거야.  아깝잖아!  너무 아깝잖아!'

지금은 엄청나게 쌓인 일더미에서 그 유혹에 고개를 젓지만 도대체 누가 알랴.

어느 날 갑자기 탁 뒤돌아서서 20대의 사랑에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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