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일을 하고 아침에 마무리 해야할 일을 마무리 한 다음
정오 점심시간이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무슨 감옥 같은 공간에 내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을
꿈에 잠깐 보았다가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
겨우 사십여분 잠들었던 것이다.

이대로 다시 자야하나 아니면 일어나야 하나를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잠을 다시 청하기로 하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리고...

열평 남짓한 연한 아주 연한 회색과 녹색이 섞인 벽으로 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한쪽엔 작은 철문이 있고, 그 우측 벽에는 철근이 박혀 있는 넓은 유리 벽이 있었다.
그리고 유리벽 우측으로는 빛이 들지 않는 이상한 작은 공간이 있었고
나는 그 방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아무튼 난 언젠가 곧 사형을 당할 입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언제가 언제일지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교도관인지 직원인지 모를 얼굴만 흐릿한 사람들을 이따금 '구경'하면서
여유있게 방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급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객이 무시무시하게 날카롭고 서슬퍼런 검으로
일도양단하듯 내려진 사형언도.
다음주도 내일도 아닌 오늘.

그것도 바로 지금.

나는 몹시 당황하기 시작했고
유리벽 너머의 사람들은 여전히 흐린 얼굴을 하고
내 사형준비를 하고 있었다.

숨이 막혀왔다.
'아냐!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 왜 하필 지금이야!
이건 꿈이자나!'

'아? 꿈?'

갑자기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한 나.
그러나 꿈 속의 상황은 조금도 안도의 한숨이라던가
안심 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우측에 있던 빛이 들지 않는 공간에 한 촉 짜리 백열전구 같은 불이 들어온 것이다.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데 그 장치의 형태는 전혀 인지 할 수 없었지만
저 공간에 내가 들어서면 난 사형되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유리벽 너머에 '목사'님이 나타나서 슬픔이 가득 스며들었으나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마지막을 위해 기도를 해 주겠다고 한다.

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난 '목사'가 아니라 '사제'가 필요해요! 종교가 다르다고요!'

내가 방안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보지만
목사의 기도는 그 입술을 통해 조금의 멈춤도 없이
흘러 나오고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그 기도가 
목사의 입 밖으로 한마디 한마디 나올 때 마다
난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그 희미한 백열전구 불빛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고 악을 쓰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발이 미끌리듯 마치 발 아래가 살짝 떠 있는 듯
나의 거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 공간으로 자꾸만 자꾸만 끌려 들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공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잠에서도 점점 깨는 것이었다.

먼저 손가락 끝이 이불의 감촉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내 방안의 싸한 우풍이 느껴지면서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의 온기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사형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현실과 꿈 속에서 나의 생명을 걸고 미친듯이 후회하며 울고 있었다.

왜 내가 지금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여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결국 내 몸은 사형장 안으로 완전히 끌려들어갔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어둠이 날 완전히 잠식하여
곧 나의 생명을 이 미친듯이 울부짖는 불쌍한 존재를
저 깊고 깊은 심연으로 끌어 들일 것임을 확실히 인지하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사형당하였음을.

그리고 그 순간 잠에서 깼음을.

잠에서 깨어 앉아서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요동치는 심장을
삼십여분 가까이 진정을 시키며 충격과 경악 속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급하게 전화기를 붙잡고 내가 꾼 이 꿈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메모를 끝낸다음 그 메모를 다시 정리하여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지금 다시한번 당신들에게 말하니

----------------------------------------------------

내 소중한,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과 동료 제위 여러분.

당신은 무엇을 믿고 당신의 시간을 이 순간을 그렇게 소모하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나'여. 넌 어찌하여 내 생명의 시간을 그렇게 쉽게 길에다 버리고 있었더냐?

당신이 그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을 해 줄 수 있는가?

당신이 지금 잠자리에 들고난 후
내일 아침에 여느 때와 같이 기지개 켜면서 일어날 수 있다고
누가 약속해 주었습니까?

당신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당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어디에 적혀 있습니까?

어째서 너는 그리고 당신은 이리도 자신의 시간을
당신의 생명을 잔인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소모하고 버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부디 자신을 소중히 하여 주십시오.

----------------------------------------------------------

나의 좌우명은 HODIE MIHI  CRAS TIBI 이다.

히브리어로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라는 뜻으로

굳이 의역을 하자면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을 수 있다는 의미로
대구 교구에 있는 성모당 제일 안쪽에 있는 성직자 묘지 입구
좌우 기둥에 새겨져 있는 글귀인데

저 말을 모토로 삼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째서 이리도 쉽게 잊고 있었단 말인가??
부끄럽고 창피하고 민망하고 나 자신에게 민망하기 짝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순간 순간을 열심으로 살아왔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자기 전 내일 아침에 내가 죽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죽은 나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마음 아프지 않게
얼굴을 쓰다듬어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던 나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유유자적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남았단 말인가.
 
내 이맘을 늘 잊지 않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잃지도 않았을 것을     버리지도 않았을 것을
어리석은 인간아. 우둔한 인간아.

마음을 들어 눈을 받치고 네 시간을 올곧게 보라.

----------------------------------------------------------

2009년 12월 23일 오후 3시에 사형당하는 꿈을 꾼
마치 크리스마스에 세 유령을 만난 스크루지가 된 것 같은..날.


일기에 적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다.

그리고 그사람을 그리워하다.


여러분.
Happy Merry Christmas.
아기예수님 오심을 축하하고 기뻐합시다.
행복하세요.

'STORY > day writt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근검절약하는 사람입니다.  (0) 2010.01.28
end  (0) 2009.12.28
꽃이 필 때.  (2) 2009.12.21
대답  (0) 2009.12.20
목소리를 들어  (0) 2009.12.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