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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scape

사랑해..



몇일 전 삼청동에서 희한한 일 (http://wishell.tistory.com/506 )을 겪은 다음 날 밤
난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다시 삼청동을 갔다.

그러나 일요일의 늦은 시간은 재즈바 라고 해도 일찍 닫는 날.
결국 잠긴 바깥 입구 앞에서 발을 돌려야 했고
거기까지 간 정성이 안타까워 곧 있을 전시회를 위해
북촌 야간 스케치를 다니기로 했다.

스케치를 하러 다니다 보니 가 보고 싶은 곳이 자꾸만 생겨서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고 결국 엉뚱한 장소에까지 이르렀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곳에 차를 세우고는 담배 하나 빼 물고 삼각대 짊어지고 돌아 다니며
기억 가득한 골목 하나 하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들려 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저어-' 하는 남자의 목소리.
무얼 찍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냥 골목 풍경을 찍는다고 하니
자기가 애인이랑 200일인데 정말 죄송하지만 곧 나올테니 같이 사진 한장 찍어 주실 수 없겠느냐고
조심조심 물어 보는 어린 친구의 얼굴 뒤로 그제서야 반쯤 불 붙어 있는 티 캔들들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귀엽기도 하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흔쾌히 그러겠노라 하고는
어린 친구랑 함께 삐뚤 빼뚤한 하트 모양의 배열을 손 봐가며 남은 티 캔들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이 친구는 씻고 있다는 애인에게 계속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안받는지
무척 초조해 한다. 좀 많이 초조해 하길래 연유를 물으니
200일이라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싸우고 헤어져 집에 들어가버렸단다.

이벤트는 준비해 뒀는데 싸우는 바람에 토라져서 안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나보다.
하긴 타이밍 잘못 맞춰서 티 캔들 하나 꺼져 있기만 해도 얼마나 어설퍼질까...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연씬 미안하다는 말에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최선을 다해 돕겠노라!! 고 다짐을 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노라니 이벤트를 위해 이벤트 카페 같은 것도 봤는데 십수만원 하는 금액이라고 해서
그 돈이면 더 맛있는 거 사 먹고 같이 놀겠다 싶어
고민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준비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곧 군대를 간다고... 조금 더 소중한 기억을 함께 가지고 싶었다고 하는 어린 남자의 모습은.. 참 멋있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어느새 티캔들 몇개는 다 녹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이 어린 친구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같은 장소에 스며있는 과거의 기억들에 새로운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보면서
왠지 모를 감동같은 것도 동시에 느꼈다.





급기야 어린 친구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끝나고 내 전화마저 빌려 몇차례 전화를 거는가 싶더니
드디어 드디어 애인이 나왔다.

뜬금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은 자기 애인과 그 옆에 서 있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
그 애인은 얼마나 어색하고 민망했을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근데 누구세요? 라고 묻는데
아아;; 대체 누구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지나가던 행인1 입니다. 그럴 수도 없고 하.하.하;;;

그러나 남자친구가 사진 찍는 분인데 좋은 분이야. 라고 설명을 해 준다.
과연 내가 좋은 분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둘의 모습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린 남자가 애인에게 한마디 짧게 그러나 부드럽게 말 하는 걸 들었다.

'사랑해...'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어느새 꼬옥 껴안고 있는 둘.

마음이 짠해져 온다..............


드디어 커플 사진.



- 을 올리고 싶었으나 초상권 때문에 포스팅 해도 되는지 물어 보지를 못해서 일단은 보류! 죄송합니다. ^^;;; -




언제 싸웠냐는 듯 언제 초조 했댜는 듯 조금씩 밝아지는 둘의 표정을 보면서
자꾸만 손이 떨려왔다.

아아 젊구나... 아아 참 예쁘구나...
이런 열정이라니...

21살의 남자와 20살의 여자.
이 둘을 뒤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걸어 잠시 앉아 있었다.




우리는 분명 크거나 작거나 하나의 공간을 살아 가고 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데 앞선 시간을 살아온 나의 공간에
뒤의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의 공간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간에 의해 좌우되며
기억에 의해 갈라진다.

내 앞선 기억들이 골목 모퉁이 모퉁이 마다 슬픈 표정으로
빼꼼히 고개를 들고 쳐다 보는 모습이 보인다.

이 둘의 예쁜 기억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짐을 들으면서...

살짝 눈물 닦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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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25 11:17

    아....
    좋은 분 맞네요!

  • Favicon of http://scat.textbe.com BlogIcon 김젼 2009.08.25 12:25

    진짜 이쁘네요 ;ㅁ;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수줍은 듯 나직하게 내 뱉는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 가물 ㅎㅎ
    저 두 분 이쁜 사랑하셨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momogun.textcube.com/ BlogIcon 모모군 2009.08.27 15:31

    오~ 잔잔하고 따뜻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이 두분들 덕분에 딕톡님마저 잔잔하고 따뜻해 보입니다. ^_^ 원래는 아닌데.. 그렇게 보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

    • Favicon of https://wishell.tistory.com BlogIcon monako 2009.08.27 17:54 신고

      아닙니다.
      충분히 원래는 아닌데 그렇게도 보이는구나.
      라는 말씀으로 이해되어집니다. 감사합니다. ㅋ

  • Favicon of http://blog.naver.com/escape0314 BlogIcon 2009.08.28 11:38

    엄훠!!! 넘 귀엽당>_</// 나 20살때 뭐했나.ㅡㅡa
    넘넘 귀여운 커플이에요 ㅎㅎㅎ 게다가 착한사람 디톡님까지!!! ㅋㅋㅋ

  • Favicon of http://magazin.textcube.com BlogIcon 마가진 2009.08.30 02:13

    하핫! 구박 당할 때(?)는 몰랐는데 디톡님. 참 멋지신 분..^^; ㅋㅋ(농담..멋진분이란 말이 농담이아니라,구박이란 말..ㅋㅋ)
    티캔들도 예쁘게 담으셨구.. 하이코. 저도 카메라하나 장만해서
    여러가지 상황에서 사진을 한 번 담아보고싶군요.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 Favicon of https://wishell.tistory.com BlogIcon monako 2009.08.30 14:38 신고

      엄.................
      마지막 줄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째...
      이렇게 고백하시는? 정중하고 강력하게 사양합니다.
      ㅡ,.ㅡ;;;;

    • Favicon of http://momogun.textcube.com/ BlogIcon 모모군 2009.09.01 22:41

      마가진님 왜 여기서 이러세요. ㅠㅠ

      이리 오세요~ 질질질....

    • Favicon of http://magazin.textcube.com BlogIcon 마가진 2009.09.02 00:15

      흠.. 디톡님께서 아리따운 아가씨셨다면 뭐, 이해하겠습니다만...ㅡㅡ;;
      엑.. 모모님까지..ㅡㅜ;;

      죄송하군요. 제 어휘력의 절대부족이 원인인 듯 합니다.ㅜㅠ

    • Favicon of https://wishell.tistory.com BlogIcon monako 2009.09.02 00:43 신고

      이미 늦으셨;;;
      에비에비~

      모모군님. 마가진님 잘 좀 챙겨 주세요. ㅠㅠ

  • penny 2009.08.31 17:44

    와...'이땐' 정말 좋은분이네요.
    그 아이들한텐 오빠가 진짜 좋은분으로 기억될 듯....
    왠지 뿌듯하실것도 같아요....
    저도 나중에 티캔들 하면 와서 사진좀...(굽신굽신)..ㅋㅋㅋㅋㅋ
    으흐흐..+_+
    (갑자기 결혼할까요 프로그램이 생각나는건;;;)
    그르나 즈르나....군대;;;;;;;;;-_-;;;

    • Favicon of https://wishell.tistory.com BlogIcon monako 2009.08.31 21:04 신고

      뿌듯? 설마.........;;
      나중에 티캔들 하면 사진 좀 찍어주마.
      근데 언제? 군대(헉;;) 갔다오고도 언제?
      설마... 에이 왜이래..;;